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경과 및 관련 내용 by 이유없음

이 내용은 엔하위키의 내용이고 공유가 된 내용이라 퍼서 올립니다.

가급적 객관적으로 적힌 사건 사고 경위이므로 참고가 많이 되네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경과

최종 확인 버전: 

목차

1 개요
2 사건 요약
2.1 2011년
2.2 2012년
2.2.1 지진에서 원전 폭발까지
2.2.2 그 이후
2.3 2013년
3 사건 일지

1 개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경과를 모아둔 페이지. 2011년 3월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며 사건일지가 아직도 빽빽하게 갱신되고 있다. 믿을 수 없다면 아래 '사건일지' 부분에 링크된 항목들을 전부 훑어볼 것.

참고로 본 항목은 2011년 4월에 문서 분리로 삭제되었다가 2012년 8월에야 부활했다. 

2 사건 요약 

사건일지가 너무 길기 때문에 요약본을 기재한다. 그래도 긴데?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따라가자.

2.1 2011년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하자 후쿠시마 원전은 가동 중이던 원자로 1, 2, 3호기를 중지시켰다. 4, 5, 6호기는 점검을 위해 이미 가동 중지 상태였으며 6분 후에 비상냉각시스템이 가동된다. 

같은 날 3시 27분에 첫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했고 3시 46분에 15m짜리 두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한다. 5.7m의 쓰나미 방호벽은 아무 힘도 쓰지 못했고 원전 지하실의 발전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가 고장난다.[1] 이에 대비한 비상 배터리가 가동되었으나 이것은 8시간밖에 버틸 수 없었다. 이때 재빨리 대처했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사건을 수습할 수 있었겠지만 어리버리한 도쿄전력은 긴급한 대체 주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결국 원자로는 녹기 시작했고 1호기가 수소 폭발을 일으켰으며 3호기도 수소 폭발을 일으켰고 2호기도 폭발했으며 4호기도 폭발했다. 이 폭발은 모두 수소 폭발이라고 발표되었으나 3호기의 경우 사용후연료봉이 핵폭발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판이다. 자세한 사항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조사 검증위원회가 만든중간보고서 요약을 참고하자. 보고 열받을 수 있으니 주의

사실 원자로를 빨리 포기하고 처음부터 해수를 팍팍 부었다면 수습이 가능했다. 원자로가 아깝다고 도쿄전력이 30여시간을 망설인 결과가 이거다.[2]

이후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었으며 UN산하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그 양이 체르노빌과 맞먹는다고 한다. 불행히도 이 의견은 10월 27일에 나온 것이어서 2011년 12월 31일 시점에서는 체르노빌보다 더 많이 누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당량의 방사능 물질이 태평양으로 뿌려졌지만 그래도 많은 양의 방사능 물질이 땅을 오염시켰으며 이에 IAEA는 원전 주변 40km 이내의 주민들을 대피시키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원전 주변 20km 이내의 주민들만 대피시킴으로서 국제 사회의 비난을 자초했고 2012년 봄까지는 제염을 통해 해당 지역의 방사능 오염을 최대한 제거한 후 상당수의 주민들을 고향에 돌려보낸다는 계획까지 짜고 있다. 방사능 오염 제거가 그렇게 쉽냐 일본 정부가 발표한 사고 수습 로드맵은 여기를 참조하자.

사고가 터지자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밀려들었지만 일본 정부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를 외치며 도움을 거부하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버틸 수가 없다'를 외치며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원자력 전문가를 보내겠다는 제안에 대해서는 끝끝내 거부했고 이와중에 도쿄전력은 주변국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렸으며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던 주변국들은 일제히 일본에 비난을 퍼부었다. 역시 일본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사고가 터진 이후 도쿄전력은 원전에서 철수하려고 했지만 '도망가면 (도쿄전력을) 없애버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협박에 굴복해서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직원들이 철수했으며 후쿠시마 50인이라 불리는 결사대만이 그 자리에 남아 열악한 조건하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이후 작업 인원은 점차 불어났으나 인력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속출하고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12월 16일에 사태 수습을 선언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아니다" 를 외치고 있으며 일본 여론도 매우 나쁘다. 이는 방사능 물질의 누출이 아직 멈춘 게 아니기 때문이며 잊을 만하면 방사능 오염수가 누출되었다는 기사가 튀어나온다 심지어 현재 원자로 내부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추측에 따르면 1, 2, 3호기의 압력용기가 뚫렸고 콘크리트 격납용기도 상당 부분 녹았다고 하지만 방사능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

2011년 말을 기준으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으며 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들이 죄다 나중 가면 틀려먹는 데다가 시간이 갈수록 발표 내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초기에는 노심용융조차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노심용융을 인정하더니 11월 말에는 압력용기가 뚫리고 격납용기도 손상되었다고 하는 판국이다. 도쿄전력이 고의로 사고를 축소 은폐했다는 증거도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규슈전력은 원자력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려고 여론 조작을 하다가 걸렸다. 이때문에 주변국의 일반인들은 시민단체나 미국의 발표를 더 신뢰하는 상황이다.

민간인에 대한 배려도 엉망이다. 후쿠시마산 식료품을 '500베크렐/kg만 넘으면' 시장에 내다 팔도록 허가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식료품 구입을 망설이고 있고 학교 급식을 포함한 이곳저곳의 식료품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어 폐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도쿄도 지역에 유통되는 모든 쇠고기에 대한 검사는 2012년 1월에야 시작된다. 피해자 집계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며 후쿠시마 현과 미야기현 일부는 백혈병 조사대상에서 제외되어있고 이와중에도 기형아 출산이 없는 이유가 그런 애는 제거하니까 그렇다는 주장까지도 나오는 판국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책 본부가 있던 오프사이드 센터의 높으신 분들은 재빨리 원전에서 60km 떨어진 후쿠시마시로 도망갔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오프사이드 센터를 원전에서 5km 거리에 세우는 바람에 사고가 터지자마자 방사능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전역의 오프사이드 센터가 대부분 이렇다니 할 말이 없다. 어디서부터 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은 스스로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으며 도쿄 한가운데의 방사선량이 높다고 신고함으로서 라듐을 찾을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시민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런 지경이니 캐나다의사협회에서 일본 지진으로 인한 대중보건붕괴라는 문서에서 '체르노빌 사고 당시의 소련 정부가 지금의 일본 정부보다 훨씬 책임감이 있다'는 평가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간단히 말해서 총체적 부실.

2.2 2012년 

2012년이 되면서 많은 정보가 나왔기에 수소 폭발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을 보다 상세히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추가적인 정보가 나올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2012년 12월 31일 이후에 작성할 예정이며 진실은 위에 기록된 것보다 더 나쁘다. 뭐라고? 저거보다 더 나쁘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2.2.1 지진에서 원전 폭발까지 

일본 정부와 민간, 국회, 그리고 도쿄전력이 각각 구성한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 원인이 무엇이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런 걸 결론이라고 내냐? 그러나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의 화상회의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으므로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요약에 있는 내용은 화상회의 동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아사히 신문의 기사 010203,04050607080910과 EBS 다큐멘터리 '후쿠시마 제 1원전 9일간의 기록', 그리고 도쿄전력이 모자이크와 편집을 거쳐 공개한 동영상을 참조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했고, 3시 27분에 첫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했고 3시 46분에 15m짜리 두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한다. 5.7m의 쓰나미 방호벽은 아무 힘도 쓰지 못했고 원전 지하실의 발전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가 고장난다. 지진으로 인해 원전이 망가졌다는 주장과, 쓰나미로 인해 원전이 망가졌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원전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곧바로 노심의 수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4시 36분에는 긴급노심냉각장치가 고장났다. 일부 냉각시스템은 아직도 가동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버틸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원전 직원들은 원전 설비의 재가동을 위해 전기를 필요로 했지만, 예비 배터리가 하나도 없어서 자신들의 승용차와 협력업체의 버스에 달려있던 배터리를 떼어와서 시스템 일부를 회복시켰다. 노심의 수위가 내려가고 압력이 높아져서 냉각수 투입이 불가능한 상황임이 파악되자, 이대로라면 폭발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3월 12일 새벽,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압력용기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방사능 공기 배출을 허가하지만 전력이 없어서 밸브를 돌릴 수가 없었고, 이 사실은 총리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결국 간 나오토가 자신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현지 상황을 직접 보기 위해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했고, 밸브를 냉큼 돌려라고 호통을 치고 원전 주변 주민들의 대피가 끝난 후에 결사대가 투입되어 밸브를 손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냉각수 주입은 여의치 않았다. 도쿄전력 본사 간부들은 해수를 주입하면 원자로를 못 쓰게 된다는 점이 탐탁치 않았고, 원전에 있는 소방차는 해발 10m 아래에 있는 바닷물을 끌어올릴 능력이 없었다. 일단 쓰나미 때문에 생긴 원전 주변의 웅덩이에서 물을 퍼서 원자로에 주입하게 되지만, 그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상황으로 보아 이 상황에서도 해수가 아닌 여과수를 쓴 것 같다. 게다가 도쿄전력 본사는 일본 정부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지 않고 요시다 발전소장에게 떠넘겼고, 온갖 잡무에 대한 사항까지 질문하느라 바빴다.

12일 아침, 도쿄전력은 긴급히 배터리를 발주하였으나 고속도로 사용허가 문제로 후쿠시마 원전에 배터리를 보내주지 못한다. 원전 직원들은 자신들의 차량에서 25개의 배터리를 꺼냈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랐고, 자신들의 쌈짓돈까지 긁어모아 이와키 시로 가서 배터리 구입을 시도하지만 역시 모자랐다. 직원들의 호주머니 돈까지 긁어모은 이유는 회사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며, 이것은 원전 장비 가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오후 3시 36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원전에 공급할 냉각수를 갖고 후쿠시마 원전에 접근하던 자위대는 이 폭발을 보고 급히 철수했고, 방사능으로 인한 자위대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불명이다.

12일 저녁,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에 바닷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한 후, 준비작업에 2시간이 걸린다는 보고를 받은 간 나오토 총리가 "그 사이에 재임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해주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자 도쿄전력 펠로우 다케쿠로 이치로가 후쿠시마 원전에 전화를 걸어서 "바닷물을 넣으면 재임계의 우려가 있다고 총리 측에서 우려를 표했다. 바닷물을 넣지 마라"고 사기를 쳤다. 일개 기업이 총리 명령을 멋대로 왜곡한 것이다.

13일 오전 2시 42분, 3호기의 압력용기에 물을 공급하는 고압주수장치(MPCI)가 정지했다. 보고 지연과 작업 지연, 그리고 작업 난이도 때문에 내부 증기를 빼내고 소방차로 냉각수를 주입한 것은 오전 9시 20분 이후였다. 이 시간 지연에는 일본 총리 관저도 한몫했다고 알려졌는데, 바닷물을 주입하려고 준비하는 원전 소장에게 "바닷물은 너무 이른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알려진 것이다. 사실은 위에 링크한 바와 같이 도쿄전력 펠로우 다케쿠로 이치로가 멋대로 총리의 명령을 왜곡하였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여과수 주입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또 낭비했다. 다행히도 요시다 발전소장은 다케쿠로 이치로의 "바닷물을 넣지 마라"는 말을 무시하고 바닷물 주입을 계속했고, 간 나오토는 "바닷물 주입과 재임계와는 관계가 없잖아"라며 다케쿠로 이치로의 행동에 황당해했다. 이뭐병 게다가 총리가 질문을 했다면 도쿄전력 본사가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그들은 이런 것까지 현장의 요시다 소장에게 다 떠넘겼기에 소장의 업무만 가중되었다.

오전 7시 30분에는 난메이흥산의 소방차 조작인원들을 모으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소방차를 제대로 다루기 힘든 발전소 직원들에게 있어 이는 분명히 나쁜 소식이었다. 게다가 이 조작인원들은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을 알고 난 후 방사능을 두려워하여 출동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오전 10시 10분에는 후쿠시마 원전에 필요한 휘발유를 실은 트럭이[3] 원전에서 60km 떨어진 오나하마 콜센터로 운반된다. 그러나 방사능을 두려워한 트럭 운전사들이 운전을 거부했기에 이 휘발유는 14일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에 보내지지 못한다.

3호기의 내부 수소가스 배출을 위해 온갖 논의가 이어졌고, 심지어 자위대의 중화기로 패널을 날려버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게다가 3호기의 압력은 계속 올라갔고, 이 때문에 냉각수 주입이 어려워지자 밴트 개방을 통해 압력을 낮추려고 했지만 아무리 열어도 곧바로 닫혔기에 소용이 없었다.

14일 오전 1시 10분, 쓰나미로 생긴 웅덩이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원자로 냉각용 냉각수의 공급도 중단되었다. 오전 3시 1분에는 도쿄전력 본사로부터 후쿠시마 원전(이 문서의 주인공인 제 1원전)에 보낸 소방차들이 후쿠시마 제 2원전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어두워서 길을 못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수도권에서 파견된 소방차들이 9시 5분에 후쿠시마 원전에 도착하여 주수작업을 하게 된다.

14일 오전 11시 1분, 3호기가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3호기에 물을 주입하기 위해 접근하던 자위대 차량은 폭발로 날아온 콘크리트 덩어리에 깔려서 박살났고, 자위대원 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지휘관은 자신의 화생방방호복 안으로 방사능 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방사선량계를 통해 확인하고 경악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죽기 전에 안전지대로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 폭발로 2호기의 냉각수 주수가 끊어졌고, 오후 7시 45분에 바닷물을 주입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오후 7시 20분, 오후 8시 22분에 2호기가 노심용융을 일으킬 것이고 10시 22분에는 압력용기가 녹기 시작할 거라는 예측이 나왔다. 다카하시 아키오 고문은 가쓰마타 쓰네히사 회장에게 "이젠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으며 14일 밤에 후쿠시마 원전 직원과 근로자들은 모두 후쿠시마 제 2원전으로 대피했다. 이 사실이 총리 관저에 보고되었다는 증거는 화상회의 영상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 시점에서 후쿠시마 원전에 남은 사람은 요시다 소장을 포함해서 약 70명 뿐이었다. 

14일 밤 8시 이후에 도쿄전력이 수배한 배터리 1000개 중 320개가 후쿠시마 원전에 도착했다. 다 박살난 이후에 오냐?

14일 밤 10시에 미나미소마시에 자위대가 와서 원전이 폭발할 것입니다. 원전에서 적어도 100km 떨어진 곳까지 대피하십시오라고 소리쳤다는 증언이 동영상 24분 30초 이후에 나오니 참조하자. 이대로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을 포기하고 철수했다면, 일본침몰이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근로자들이 모두 철수하면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 3기와 사용후핵연료 냉각수조들 안에 있는 핵연료가 녹아내렸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은 멸망하기 때문이다.[4]

3월 15일 새벽 5시 30분, 근로자들의 철수 소식을 들은 일본 총리 간 나오토는 도쿄전력으로 쳐들어가서 "전면 철수는 절대로 안 된다"고 일갈했다. 여기서 나온 발언이 "철수는 있을 수 없다.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반드시 무너진다."이고 이 발언에 겁먹은 도쿄전력이 철수를 포기했다는 게 당시 일본 정부를 맡았던 정치인들의 주장이지만, 도쿄전력은 자신들이 전면철수를 시도한 적이 없다고 부정한다.

2.2.2 그 이후 

도쿄도 소방관들과 자위대를 긁어모은 일본 정부는 결사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을 냉각시키려고 애썼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열심히 일본을 지원했으며, 그 노력이 효과를 봐서 일본침몰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의 현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으나, 원자로 1,2,3호기의 내부 상황은 완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녹아버린 핵연료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는 매우 취약하며, 만약 지진으로 붕괴될 경우 체르노빌의 10배 이상이나 되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와 있다.

16세 소년이 나이를 속이고 원전에서 일해도 파악하지 못하고17세의 미성년자를 사고 현장에서 일하게 하고, 후쿠시마산 쌀이 몰래 팔리고,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방사선량계에 납으로 커버를 씌울 것을 강요하는 자가 있었고, 그 결과로 도쿄전력 시설은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 그 외에도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고를 친 도쿄전력의 악행은 정경유착으로 유명한 일본 정부마저 분노하게 만들었고, 결국 일본 정부는 6월 27일, 도쿄전력의 국유화를 결정했다. [5]그 후 기존 경영진은 모조리 해임되고 새로운 경영진이 도쿄전력을 맡아 사고 수습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칭찬할 구석은 별로 없다. 탈원전 시위대에게 압박을 가하고, 원자력 손해 배상에 대한 보충배상협약(CSC)에 가입하지 않아 일본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의 재판을 통해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을 내게 생겼으며, 후쿠시마 원전이 위치한 도호쿠 지방에 거대 쓰나미가 올 가능성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지금 당장 발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는 경고문구를 삭제하는 등,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된 도쿄전력 간부와 정부 관계자 등 100여명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 사고를 일으킨 악의 무리들이 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

2.3 2013년 

관련 내용은 2013년 12월 31일 이후에 작성할 예정이다. 또 얼마나 열받는 내용이 수록될 것인가? 설마 위의 기록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근데 그럴 것 같잖아. 안 될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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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은 2011년 2월(지진 발생 8일 전)에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지진조사위원회가 지금 당장 (거대 쓰나미가) 발생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경고했지만 보고서가 공개된 비공식 모임에 있던 위원들의 반대로 해당 문구는 삭제되었다. 물론 도쿄전력도 그 모임에 있었다!
[2] 수조원 짜리 원전을 폐기하는 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사기업" 인 도쿄전력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결정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30시간 동안이나 아무 짓도 안하고 있었다는 건 확실히 에러. 그러나 2012년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진실은 이보다 더 나빴다.
[3] 이 휘발유는 후쿠시마 원전에 있는 소방차를 위한 것이었다. 휘발유가 없으면 소방차 가동이 불가능하고, 소방차에 달린 펌프도 멈춘다.
[4]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EBS 다큐멘터리 '후쿠시마 제 1원전 9일간의 기록'에서 "그렇게 되면 체르노빌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퍼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증언했다. 일본이 망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5] 사고 수습을 위해 도쿄전력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다. 그 액수는 2013년 1월 기준으로 피해배상금만 10조 엔이 넘으며, 원자로의 폐로와 핵연료 회수, 제염 작업 등에 드는 비용을 합하면 그보다 더 많다. 도쿄전력이 아무리 부자라도 이 돈을 전부 자력으로 충당할 수는 없기에, 일본 정부는 국가에서 책임을 지기로 하고 그 대신 도쿄전력의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일단 1조 엔을 증자해서 최대주주가 되기로 한 것. 그러나 도쿄전력 경영진은 돈은 받을지언정 경영권은 내주기 싫다고 버티다가, 국유화와 함께 전원 해임되었다. 10조 엔이 넘는 돈을 그냥 삼키겠다면 누구나 열 받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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